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버추어 파이터 3 (문단 편집) === 맥시멈 배틀 이후 === 한국인 두 사람의 결승은 일본 플레이어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화로 남았다. 그리고 그 여파는 생각 외로 컸다. 일본의 우승을 생각했던 [[세가]]는 이런 결과에 당혹했는지 '''[[도쿄 대첩(야구)|공식 비디오에는 60분 가량을 일본 대표 선발전을 위주로 채워버리고 세계 대회를 20분으로만 채우는 짓을 저지른다.]]''' 또한 대회 당시 신의욱과 조학동의 인터뷰를 모두 삭제한 행동까지 선보인다. 그리고 우승 직후 신의욱, 조학동 두 명은 일본의 최강 플레이어들 상대로 다시 한 번 일전을 벌이는데 결과는 당연히 처참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첫날 무패로 압살한 조학동은 먼저 귀국. 홀로 남은 신의욱과 일본 대표 게이머들[* 일본내에선 이 일본 고수들이 '철인'이라고 불렸는데 이 '철인'이라고 불린 고수들은 고수들이 많은 오락실에서도 '''100전을 하면 95% 이상의 승률을 자랑하던 굇수들이라고 한다.''']의 대전은 모든 격투 게임을 통틀어 벌어진 한일전에서 가장 잔인하고 냉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결과로 말하면 10X승 6~7패 가량. 6~7패로 인해 철권의 장익수의 100연승 무패 신화 비교할 수 없다는 유저들이 간혹 있었지만 실상 내용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시 신의욱은 2일간의 일전(조학동은 1일차 무패 연승 이후 먼저 귀국) 속에서 한판당 9전 5선승제라는 압박스러운 룰로 진행됐다.[* 게다가 당시 동행했던 천창욱의 말에 따르면 기판 자체도 캐릭터의 체력을 높게 설정해놓은 버전이었다고 한다. 즉,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장기전이었던 셈.] 그리고 신의욱의 플레이방식 역시 철저히 일본 유저들을 농락하는 형태로 진행됐는데 자신의 주력 캐릭터는 배제한 채 [[미러전|상대방의 캐릭터와 동일하게 선택하여 플레이]] 했다. 쉽게 말해 일본의 사라 최강자가 나오면 신의욱도 사라를 선택하는 식으로 대응하여 플레이, 일본의 잭키 최강자가 나오면 잭키로 대응하여 대놓고 압살해버리는 형태로 진행. 즉 자신의 주력은 제외한 채 전 캐릭터를 사용하여 능욕하는 사상 유례없는 안드로메다 관광을 진행했다. 그리고 한가지 첨언하자면 [[버추어 파이터 3]]에서 신의욱의 주 캐릭터는 대회에서 우승한 아키라 유키가 아니었다. 3편 당시 주력 캐릭터는 잭키였으며 이후 [[리온 라파엘]] 같은 캐릭터로 대활약한 전적이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당시 한국의 최고 대회였던 제2회 메가배틀 신의욱이 소속된 리플레이즈와 디아블로의 결승전이였다. 당시 리플레이즈는 10~11점 정도까지 뒤진 최악의 상황에서 신의욱은 갑자기 리온을 꺼내들면서 기적적인 연승으로 1점~2점차까지 추격하던 명장면을 연출했었다. 이후 아쉽게 나머지 1승~2승을 하지 못해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쳤지만 당시 이 시기의 신의욱을 아는 사람들은 맥시멈 배틀의 우승의 모습보다는 이런 기적적인 장면들이 신의욱이라는 플레이어의 수준을 확실하게 보여준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다. 참고로 당시 상대팀이었던 디아블로 팀 역시 세계 최강이라고 할수 있는 한국에서 파이널 4에서 반드시 거론되는 강팀이며 디아블로 매직 스탭이라는 테크닉을 고안하여 명성을 떨치던 팀이다. 대표적인 플레이어는 팀장 권오민, 하창훈 리온 등이 명성을 떨쳤다.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는 '''카게마루'''를 주력 캐릭터로 내세워 우승을 차지한바가 있으며 신의욱의 이런 아키라 유키에 관한 이미지는 버추어 파이터 2 시기의 아키라로 보여준 초월적인 실력으로 보여준 시기와[* 같이 세계대회를 참가했던 이게라우 조학동조차 이 시기의 신의욱을 언급하길 10판 중 1판조차 이기는게 어려웠다고 한 바가 있다. 당시 이게라우 조학동은 버추어 파이터 2 시절 한국에서 8강권이었던 사시미팀을 이끌고 있었음에도 저렇게 회고할 정도...] 맥시멈 배틀의 [[아키라 유키]]로 우승하고 임팩트를 남기면서 인해 아키라가 주 캐릭터로 많은 이들이 착각하곤 했지만 [[버추어 파이터 3]]에서 만큼 사실 잘못 알려진 경우다.[* 당대 세계 최강의 아키라 유키 플레이어는 신의욱이 아닌 부산 지역의 전설적인 플레이어 주씨 아키라를 언급하는 이들이 많은 편이다. ] 이 때문인지는 불명이나 당초 우승자는 다음 대회에 초청하기로 정해져 있었음에도, 이후로는 아예 대회 자체를 열지 않아 한국 유저들 사이에서는 한국인 플레이어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며 논란이 되었다. 세계 대회 우승 상품 자체도 버추어 파이터 3 기판이었지만 한국 대표가 결승에서 맞붙자 상품을 바꾸었다라는 말도 나왔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당시 게임라인 인터뷰에서 신의욱이 "우승 상품은 버추어 파이터 3 기판이라도 주는줄 알았는데 기판은 커녕 맥빠지는 상품이라 실망했다."라는 인터뷰가 와전된 것이다. 일본은 2016년 e스포츠협회가 출범하기 전까지 경품표시법 상 게임 대회에 10만엔 이상의 상금이나 경품을 거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기판은 상품으로 걸 수 없었다. [youtube(QRPWsXXbNnc)] 다만 한국 플레이어에 대한 홀대 부분에 대해선 일정 부분 반론도 있는데, 먼저 맥시멈배틀의 형식을 보면 일본 전국예선을 돌파한 96명 참가자 해외 선수 9명 초대 , 첫날은 베스트4까지를 뽑고 둘째날 언더20 오버20 레이디부분 챔피언을 선출한뒤 이 3명을 다시 대결시켜 일본 1위를 정하고 다시 일본 각부분 3명의 챔피언을 초대 9명과 대결해 세계1위를 결정하는 형태였다. 다시 말해 세계대회 예선이 아니라 일본내 예선을 거처 올라온 각 부분별 결승이기 때문에 세계대회 쪽이 규모 자체는 훨씬 작았다. 또한 일정에서 알수 있듯이 세계대회가 메인 이벤트라기보단 그냥 일본 1등이 세계대회도 적당히 3명 넣으면 알아서 우승하겠지란 안일한 생각에서 짜여진 대회라서, 한국 플레이어 우승 여부를 떠나 대회 자체가 그런 구도로 짜여진 일정이다보니 세계대회 비중이 적다는 지적은 일정부분 타당하나, 맥시멈배틀 영상물의 분량으로 지적한다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먼저 분량. 세계대회는 고작 20분이라는데 12명이 겨루는 시합이 20분인데 96명이 이틀간 치룬 대회가 한시간이다. 한시간동안의 분량에 96명의 본선 진출자들의 언더20과 오버20과 레이디즈 까지 3개의 대회를(4개지 부분) 담았는데 세계대회를 홀대했다는 평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 사실 맥시멈배틀은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 한국대표가 출전한 버추어파이터 대회로는 처음이지만, 실은 버파2때 대만대표등을 초대해 당시에도 코리안 스텝과 같은 타이완 스텝이라는 화제가 있었다. 세가로서는 적당히 불러 모양새만 갖추면 알아서 일본 선수들이 우승할 거란 예측은 할 수 있었겠으나, 이걸 분량으로 지적하는건 설득력이 부족하다. 차라리 모처럼 세계대회인데 12명으로 토너먼트를 진행했다는 것 자체가 세가가 대충 생각없이 만든 이벤트성 대회란 것에 더 가깝다. 비디오에서는 세계대회 1라운드가 끝나고 붕붕마루의 [세계대회 치고는 수준이 낮다] 라는 코멘트에서 알수 있듯이 우월감을 가진건 사실이다.(아직 신즈 시합 전) 결국 이대회는 일본 1위로 진출한 야나가가 대만대표에게도 지면서 1,2,3위를 모두 외국선수가 차지한다. 문제제기가 된 승리 인터뷰 통편집 부분은 그렇다고 일본 선수들의 인터뷰가 충분히 수록되었냐면 그것 또한 아닌게, 언더 20의 3위 세가루 2위 오스 1위 야나가의 인터뷰가 모두 5초에서 10초이내로 편집을 , 오버20의 챔피언 캬사오의 인터뷰는 5초로 편집. 2위와 3위가 각 10초 분량으로 애초에 근본이 없는 편집이었다. 영상 자체가 이런쪽으로 무성의하단걸 지적하면 몰라도, 실제 통편집 자체를 문제로 삼는다면 맥시멈 배틀 영상보다는 버추어파이터 10주년 영상이 더 심각하다. 3 대회는 앞서 설명한 배틀코시엔 하나만 나오고, 맥시멈배틀이 아예 삭제되었다. 3에서 유일한 세계대회이자 몇안되는 공식 대회임에도 영상이 정말 말 그대로 통편집되어 아예 수록되지 않았다. 모리나가 맥시멈 배틀은 이 대회를 끝으로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3이후 세가의 공식대회가 이전 만큼 열리지 않은건 사실이나 이후 두번다시 열지 않은건 또 아니다. 맥시멈 배틀 이후 열린 공식 대회로는 자바티 배틀 코시엔으로 어느정도 공식으로 봐도 무방한 대회로 이때의 승자가 약캐평인 타카아라시의 쿠리타이다 보니 얼마나 수준이 낮으면 타카가 우승을 하냐는 이야기가 국내 통신에서는 한동안 돌았었다. 실제 쿠리타는 대회 유일의 타카아라시 유저이나 버파 이전에 스코어러 출신이란 점에서 인간 성능으로 무시할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일본 자국내 유저만 우대했다고 하기엔 3때 세가 '공식' 대회 우승자 내지 순위권으로 유명한 플레이어 자체가 존재감이 미미하다. 비공식인 아테나와 비트라이브라면 얘기가 달라지나 이는 세가가 여는 대회가 아니라 세가가 여는 공식대회에 대항?하고자 개인점포들 연합에서 여는 대회였다. 버추어파이터 대회가 세가 공식에서 비공식으로 옮겨가는 시기가 이때쯤으로, 세가는 이때부터 자국내 대회보다 해외 홍보에 더 열을 올렸다. 지금도 유투브에서 볼 수 있는 캬사오의 영국방송 녹화분이나 쿠리타 등 유명 플레이어를 모아 호주 세가 이벤트에 초청하는등 일본보다는 해외에 더 힘을 쏟았다. 다만 이 시기는 이걸 대회로 볼 수 있냐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세가의 유명 플레이어 투어에서도 호주와 대만 영국등을 방문해도 정작 옆나라인 한국은 한번도 오질 않았기 때문에, 이 시기의 세가가 의도적으로 한국을 배제했다는 설에는 신빙성이 있다. 캬사오나 일본 유명 플레이어의 한국 방문은 세가의 초청이 아닌 모두 자비로 방문이다. 그나마도 일본 점프를 통한 일반 신청자 모집으로 호주 어뮤즈 먼트 오픈 기념으로 참가한 쿠리타의 소감은 "그냥 여행가고 하루 대충 이벤트 여는 형식"이었다 하니 실상 대회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